환공포증, 공포증 아닌 단순 혐오감일 수 있어

해바라기씨, 연꽃씨, 벌집무늬, 천연 스펀지, 그리고 거품이 생긴 팬케이크 반죽까지 작은 구멍이 수십 개 뚫려 있는 모습을 보면 벌레가 온 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간지러운 증상이 나타나는가? 그렇다면 ‘환공포증’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 보는 것은 어떨까?

환공포증은 불규칙적으로 숭숭 뚫려 있는 구멍을 보거나 군집화 된 특정 패턴이 밀집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심한 불쾌감 및 거부감을 느끼는 증상이다. 전 세계인구의 16%가 이러한 증상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환공포증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환공포증은 정신질환 진단 가이드인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의 다섯 번째 개정판(약칭 DSM-5)에는 나와 있지 않다. 정식으로 인정된 증상이 아닌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Frontiers of Symphysical의 2018년 리뷰에 따르면, 강한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일반적인 공포증과는 달리, 환공포증의 증상은 주로 혐오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공포증은 특정 대상이나 장소, 상황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갖는 증상으로, 메스꺼움, 현기증, 두근거림, 떨림, 공황 등을 유발하는 일종의 불안장애이다. 과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만한 경험을 했거나 다른 이들의 공포반응을 학습하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DSM-5에 기술된 바에 따르면 공포증은 이로 인한 증상 때문에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여야 한다. 환공포증이 아무리 심한 불쾌감을 준다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방해할 정도로 심한 증상을 유발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뉴욕 콜롬비아 대학의 임상심리학 조교수인 Anthony Puliafico는 Live Science의 인터뷰에서 “작은 구멍이 있는 물체나 이미지를 혐오하는 공포증은 먼저 근본적인 이유부터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개인이 작은 구멍이나 무늬 사진에 반응하지만, 이로 인한 혐오감이 그들의 신체 기능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라면 이것은 공포증이 아닐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환공포증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불리기 시작한 것일까? 이는 둥글다는 뜻의 환(環)과 공포증을 합친 단어로, 영어에서는 구멍을 뜻하는 그리스어 trypo와 공포증을 뜻하는 phobia가 결합되어 trypophobia라고 불린다. 환공포증과 trypophobia 모두 인터넷상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각종 매체에 등장할 정도로 인지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인기에 힘입어 환공포증은 2013년부터 학문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연구자들은 환공포증이 맹독을 지닌 뱀, 개구리 등 선천적으로 위험한 동물에 대한 두려움의 잔재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군집화 된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맹독성 동물들을 피하기 위해 인류는 이와 유사한 문양을 보면 혐오감과 공포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일부 연구원들은 환공포증이 질환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각종 전염병 및 기생충 감염 질환, 천연두 등의 질환은 피부를 가렵게 할 뿐만 아니라 얼룩덜룩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환공포증은 이처럼 질환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한 문양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북함을 느끼기 쉽고, 전염병 등을 앓을 때 많이 발생하는 피부에 벌레가 기어 다니거나 가려운 듯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환공포증이 실제 불안장애를 유발하는 공포증인지에 대한 의견은 아직 분분하다. 그러나 아직 정식적인 정신질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환공포증으로 실제 이상 증세를 겪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에 Puliafico는 “환공포증에 의한 증상이 심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면 방치하기 보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 전문지식을 가진 의료진을 찾아 상담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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