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말이 있다.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라는 의미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이는 조선시대에 특히 강조되었던 사상으로, 현대에 들어서는 이미 옛말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사상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잔존하고 있다. 신체 일부를 제거하는 것에 대해서 큰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치아를 뽑는 것인데, 실제로도 치아 건강은 신체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자연치아는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발치를 해야 구강 건강에 더 나을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치는 어떤 경우에 해야 할까?

먼저 충치를 심하게 앓고 있는 경우이다. 충치는 심한 편이 아니라면 썩은 부분만 제거하고 보철물을 씌워서 마무리할 수 있다. 치아 내부 신경 조직이 손상되었거나 감염된 상황이라면 신경과 염증 조직을 제거하는 신경치료를 적용하는데, 이 역시 자연치아를 보존할 수 있다. 그러나 보존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조속히 발치를 한 후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자칫 다른 치아에도 충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잇몸이 약해져 치아가 과도하게 흔들릴 때도 발치가 필요하다. 입 안쪽 면을 덮고 있는 점막인 잇몸은 치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보통 잇몸은 대부분 바로 아래 치조골을 덮으면서 골막에 단단히 부착되어 있다. 이 경우 저작 시 음식물에 의한 마찰 자극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치아 건강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잇몸이 어떤 방법으로도 개선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잇몸뼈가 더 손상되기 전에 발치를 해야 한다.

발치하면 생각나는 것, 바로 사랑니이다. 이는 치아 중 가장 뒷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에 양치질 시 잘 닦이지 않아 치석과 충치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또, 매목 돼 앞어금니 뿌리를 밀고 있는 경우라면 사랑니가 앞 치아의 뿌리를 손상시켜 잇몸 붓기와 그 외 2차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통증이 없더라도 가급적 뽑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잉치 역시 발치를 해야 한다. 이는 정상적인 치아 수보다 치아가 더 존재하는 경우로, 과잉치를 앓게 되면 영구치 앞니가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 이로 인해 치아가 벌어지거나 틀어지는 등 제대로 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간혹 물혹이 생기는 경우도 있어 반드시 빼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정치료 시 작은 어금니를 빼는 경우이다. 교정을 할 때 공간이 조금 남는다면 굳이 발치가 필요하지 않지만, 치아가 이동할 공간이 없는 상황이라면 발치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무조건 비발치교정치료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은데, 치아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치료법을 고집하면 제대로 된 교정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고 싶다면 교정 시 치아를 몇 개 빼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치아를 뽑는 것도 좋지 않지만, 자연치아를 보존한다는 이유만으로 현재 치아 상태를 간과하고 방치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치아통증 등 구강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면 치과를 찾아 정밀검사를 받아본 후, 치아를 뽑을 때의 이득과 뽑지 않을 때의 이득까지 꼼꼼하게 따져 발치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그루터기치과 윤정진 원장 (헬스인뉴스 건강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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