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자신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며 인간의 영혼을 착취하는 성과주의 사회를 꼬집는다. 그는 성과주의 사회는 ‘나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내고, 결국 인간은 이 강박 때문에 무너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빠르고 많은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사회와 개인을 병들게 한다. 빠르고 많은 것을 좋아하는 성과주의 사회가 남긴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번아웃 증후군’이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란 일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으로 무기력증과 자기혐오, 의욕 상실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어플 블라인드에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10명 중 9명에 달하는 이들이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성과를 내지 않으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일감을 바리바리 싸 들고 퇴근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일을 하면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이들은 일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일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폭음, 폭식, 흡연, 카페인 섭취로 해소하려 하기에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건강까지 저하될 우려가 높다.

직장인만이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주부나 자영업자, 그리고 어린 학생들도 충분히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다.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마음’에 문제가 발생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나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경우, 스트레스를 쌓아두는 성격,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 번아웃 증후군으로 이어지기 쉽다. 스스로 이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번아웃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다음은 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일이 우선이 아닌, 나 자신이 우선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또한, 스스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마음과 건강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키워드인 ‘욜로(You Only Live Once)’,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워라벨(Work and life valance)’은 어쩌면 번아웃의 늪에 빠진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작은 움직임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한 번쯤은 뒤도 돌아보고 옆으로도 달려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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