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하지현 교수

추석이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 명절 잔소리, 고부갈등, 불편한 사람들과의 만남 등등이 이유다. 매년 마주하지만 매번 쉽지 않은 상황들, 어떻게 대처해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까?

실제로 어른들과의 대화로 추석, 설날 같은 명절이 스트레스인 이들이 많다. ‘몇 학년이니? 공부 잘하니? 서울대 가야지. 열심히 해라. 열심히 해서 엄마, 아빠 고생한 것 보답 드려야지’ 이런 얘기들이 주다. 대학생 쯤 되면, ‘취업은 언제 하니. 장학금은 받니?’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어렵게 취업을 하면, 결혼은 언제 하는지 물어보시고 또 망설이다 아이를 낳으면 둘째는 언제 낳는지, 질문을 받는다.

자식 자랑도 하신다. ‘우리 철수는 연봉이 7천이래. 차도 외제차로 바꿨어’ 등등.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실까? 관심이 없어서, 잘 몰라서가 첫 번째 이유다. 잘 모르니 얼추 이 나이쯤 이런 고민을 하겠지, 하는 생각에 물어보는 거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은 성장의 마일스톤에 있다. 대략 몇 살 때 무엇을 한다는 게 있다. 제 때 제 길을 가지 않으면 이상하고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고, 취업하고 공부하고 아이 낳는 것 등등 모든 건 개인의 선택이다.

또 하나는 자랑이 하고 싶어서 할 때가 있다. 전체 가족이 모여있는 데서 우리 집 애들이 제일 나간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거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화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않으면 된다. 그냥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보자. ‘건강은 어떠세요?’,‘ 임플란트 안하세요?’, 등등 그 나이 때 할 만한 것들에 대해 물어보면 된다. ‘주변에 암 걸린 분들 많다던데, 암 검진은 받으세요?“,’ ‘검버섯이 있으시네, 우리 엄마는 얼마 전에 제가 피부관리 좀 받게 해드렸는데, 피부 관리 좀 받으세요’ 등등처럼 말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내가 재밌어 하는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 스포츠 이야기, 최근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이야기 등을 하면 된다. 경우에 따라 듣는 분이 호기심이 많으면 같이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재미없어서 다른 데로 가실 거다.

반대로 내가 오랜만에 조카를 만났다면, ‘애인은 있니?’, ‘애는 어떠니?’ 등의 질문은 조카들이 싫어한다는 것, 명심하길 바란다. 물어보지 말고 내가 요즘 재미있다고 느낀 것을 말해 보자. 예를 들어 재미있게 본 유튜브 영상이나, 미스터 트롯을 보는 데 그 중 누가 제일 좋더라, 같은 것이다.

또 눈에 보이는 작은 디테일에 관심을 가져보길 바란다. 머리카락을 염색한 조카가 있다면 ‘그게 무슨 색이니, 궁금하다, 예쁘게 됐다’라고 말하는 거다. 부정적 판단을 하기 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보길 권한다.

조카가 가지고 있는 휴대폰이 신기하고 새로워 보이면 ‘그거 TV에서 광고하는 그거니? 너 어떻게 그런 비싼 것을 차고 다니니?’ 이런 말이 아니라 ‘조카가 시계에 관심이 많구나’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비판적이고 판단을 내포하고 있는 질문이 아니라 그저 중립적인 호기심을 가진 질문은 해도 된다. 다만 인생의 중요한 마일스톤과 관련된 게 아니라 사사로운 ‘스몰 토크’를 하자. 인생의 중요한 마일스톤에는 관심을 끄자. 각자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짧은 정보를 주자. 객관적인 정보를 주면 그 것에 맞춰 이야기하고, 넘어가면 된다. 그렇게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대화를 끝내면, 무례하지 않다.

일 년에 두 번 보는 확대가족들과 이런 식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에 대해 알고 느끼는 건 일 년에 두 번이 아니라 평소 연락하며 알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말이다. 이번 명절 어르신들과 식사라도 하게 될 때 대화가 껄끄럽다면 이렇게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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