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이비인후과 이동희 교수

우리 사회 어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의료계에도 소위 “관행”이라는 것이 있다. 관행이란 처음 시작은 누군가에 의하여 어떤 목적과 이유를 갖고 시작했으나 후대 사람들은 그 목적과 이유를 잊은 채 “그냥 과거에 전수받은 대로” 답습하는 것을 말한다. 귀 수술을 하기 전에 피부절개 부위 주변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삭모, 削毛)이 귀 수술 분야의 관행에 해당한다다.

필자가 이비인후과에 발을 들인 것은 25년 전이고, 전문의로서 집도를 시작한 지 어언 18년이 되어간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만성중이염환자들에게 고실성형술을 실시 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의외로 미용에 관한 부분이다. “선생님, 머리카락을 안 자르면 안될까요?”라는 질문을 귀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들로부터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머리카락은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다시 자라는데, 환자들은 안전하고 성공적인 귀 수술을 위해 머리카락을 조금 자르는 것에 대해 왜 저리 신경을 쓰는 걸까?” 십여 년 전 필자의 대답은 “네, 잘라야 합니다. 머리카락이 있으면 수술에 방해가 될 뿐 더러 수술 후 창상 감염에도 안 좋은 결과를 줄 수 있어 수술이 실패하거나 합병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였다.

그러나 이제는 “네, 머리카락을 안 잘라도 됩니다. 머리카락이 있어도 제가 환자 분을 수술하는데 전혀 방해가 안될 뿐 아니라 수술 후 창상 감염에도 아무 영향이 없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얼마 전 타 대학병원에서 귀 수술을 한 후에 증상이 재발하여 재수술을 해준 어느 남성 환자는 “이전에 수술한 대학병원에서는 귀 수술 하기 전에 삭모를 했는데, 여기서는 왜 머리카락을 안 잘랐나요? 삭모를 안하고 수술해도 되나 봐요?”라고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회진을 간 필자에게 오히려 반문했다. 짧은 머리의 중년 남성은 수술한 다 다음날 머리카락도 그대로인 상태로 귀 뒤 피부절개 부위에 아무 드레싱도 없이 그냥 집으로 퇴원했다.

과거에는 귀 수술뿐 아니라 대부분의 수술에서 신체의 모발을 깎고 수술을 하곤 했다. 하지만 삭모와 수술 후 창상 감염률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며 오히려 잘못된 방법의 삭모가 수술 후 창상 감염을 증가시킨다는 보고들이 나오면서 이제는 수술 전 삭모를 않는 것이 의료계의 올바른 관행이 되었다.

물론 머리카락은 다시 자란다. 그렇지만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는 아주 느리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통상 하루 0.3mm다. 즉, 2-3 cm를 자르면 2-3달이 걸린다는 의미다. 흔히 머리카락을 자른다고 하면 여성 환자들이 더 싫어할 거 같지만, 실제 진료현장에서 보면 반대의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남성들의 경우 잘린 머리카락 부위가 그대로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성형외과 의료진과의 상의를 통해 삭모없이 귀 수술하는 방법을 2016년부터 수술현장에 도입했다. 그 결과 환자들의 만족도는 바로 높아졌다. 그렇게 삭모 없이 귀 수술을 한 지가 벌써 4년이 지났고 그간 수백 명의 환자가 삭모없이 귀 수술을 받았다.

과거에 의사들이 우려했듯 수술하는데는 전혀 방해가 안될 뿐 아니라 수술 후 창상 감염에도 아무 영향이 없었다. 그리고 그간의 본인 경험을 정리하여 2018년, 2020년에 저명한 국내 및 국외 학술지에 그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또 현재 의정부성모병원이비인후과에서 통상적인 외이 및 중이 수술을 할 때 삭모없이 수술을 하고 있으며 수술 후 창상 감염의 합병증 없이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혹시 “아직도 귀 수술하는데 머리카락을 깎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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