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정의학과 이상훈 원장
삼성가정의학과 이상훈 원장

우리 역사에서 큰 존경을 받는 임금이 세종대왕이다. 어질면서 덕이 뛰어난 세종은 아예 성군(聖君)으로 불린다. 인격이 극히 완성된 사람이 성인(聖人)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꿀 선한 영향력을 실천한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를 세계 4대 성인이라고 한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존재가 왕이다. 성군(聖君)은 왕중에서 성인(聖人)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세종은 인격이나 업적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젊은 시절의 세종은 몸이 비대했다. 세종은 21세에 왕이 됐다. 즉위 첫해인 1418년 10월 9일 조선왕조실록에 세종의 체형이 소개돼 있다. 상왕인 아버지 태종의 증언이다.

"주상(세종)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몸이 비중(肥重) 하시다. 마땅히 때때로 나와 노닐어 몸을 존절히 하셔야 한다.“

비중(肥重)은 살이 많이 쪄 몸이 무거운 것이다. 뚱뚱하면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세종은 사냥에도 관심이 적었다. 신체활동이 줄면 건강을 잃기 십상이다. 상왕인 아버지 태종은 청년이지만 비만 아들 세종의 건강을 걱정한 것이다.

몰입형 인간인 세종은 완벽주의 성향이 짙었다. 평생 일에 빠져 살다가 건강을 잃었다. 무릎통증, 요통, 당뇨, 강직성 척추염, 안질환, 종기 등 다양한 질환으로 고통받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의 질환이 50여 차례 나온다. ‘움직이는 병동’ 세종은 주위에 안타까운 호소를 한다.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긴다. 나의 쇠로(衰老)함이 심하다.”

많이 아픈 세종이어지만 자녀는 많았다. 왕은 18남 4녀를 두었다. 여러 왕자중에서 세종을 가장 빼닮은 아들이 문종이다. 학문적 관심도, 백성사랑도, 정치력도, 우애도 아버지와 판박이였다. 특히 체격도 닮음꼴이었다.

질환으로 고통받은 세종은 판박이 체형인 문종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들아, 걸음이 널 살린다!” 세종은 뚱뚱한 아들의 건강 유지법으로 걷기, 승마, 사냥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세종의 아들 건강관리법은 단종 즉위년 9월 23일 실록에 보인다.

“세종은 항상 신하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자(문종)는 뚱뚱하다. (건강 유지를 위하여) 늘 궁궐에서 걷게 하고, 후원에서 말을 타게 하고, 매 사냥을 하게 하라. 이렇게 하면 혈기가 통한다(世宗常命大臣曰: ‘世子多膚, 常令習步內庭, 乘馬後園, 至令放鷹, 以通血氣).”

그러나 아들 문종은 아버지 세종처럼 일에만 빠져 살았다. 효심이 깊은 문종이지만 아버지의 엄명인 ’운동의 생활화‘는 따르지 않았다. 몸 관리에 신경을 덜 쓴 문종은 등에 난 종기(등창)로 숨졌다. 항생제가 없던 전통시대에 등창은 자칫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등창이 심하면 욕창이 될 수 있다. 원인 세균이 혈액까지 침범하면 패혈증으로 악화돼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문종의 등창을 단순한 염증이 아닌 심각한 질환이었던 것이다.

문종이 걷기, 승마, 매 사냥을 통한 꾸준한 운동을 했다면 보다 건강했을 것이다. 문종이 운동을 멀리한 이유는 비만에서 찾을 수 있다. 몸에 체지방이 지나치게 측적되면 움직임이 불편해진다. 이는 운동감소, 체중증가, 면역력 저하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운동 부족시, 무엇보다 근골격계질환에 취약하다.

건강관리 핵심은 체중을 줄이는 데 있다. 전신 골격근이 활용되는 대근육 운동인 걷기는 몸에 무리가 없는 체중조절이 가능하다. 또 규칙적인 걷기는 혈중콜레스테롤과 같은 혈액 성분에 긍정 영향을 미친다. 승마와 매사냥도 계속 신체의 중심을 잡으며 이동하게 돼 걷기와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세종대왕이 비만관리법으로 제시한 걷기, 승마, 매사냥은 현대의학 시각으로도 매우 뛰어난 처방이다. 성군(聖君) 세종의 다른 이름은 유능한 의사(醫師), 명의(名醫)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듯싶다.

(글 : 삼성가정의학과 이상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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