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최 선수 사후 지난 3년간 가해 당사자인 운동처방사와 감독, 그리고 선배 선수는 각각 징역 8년, 7년, 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체육계 인권 개선을 위한 최숙현법과 스포츠 윤리센터가 제정, 설치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엄한 처벌과 법, 제도가 확립되어 체육계 약자들에 대한 보호와 구제가 개선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선수 인권이 정말 개선되고 있을까? 개선을 기대해도 좋을까? 만일 그런 환상과 기대에 빠져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순진하거나 체육계 현장을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숨기려는 사람이다.
폭행, 성폭행, 길들이기, 학습권 침해 등 주로 선수들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고질적인 체육계 문제다. 그때마다 전문가들은 승리 지상주의, 그리고 예방과 대응 시스템 부재 및 부족, 인권 교육 부실, 온정주의, 심지어 지도자 처우 부실 등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였다. 틀린 지적이 아니다. 그러한 지적을 토대로 정부와 체육계는 정말로 많은 대책과 제도를 만들어냈다. 그런데도 왜 고 최 선수와 같은 비극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가?
고 최 선수 사후 2년간 국회의원실이 발표한 자료들에 의하면 여전히 실업선수의 7명 중 1명(13%)이 폭력을 경험하고 있고, 학교 운동부 지도자 비위 유형 총 198건 중 가장 많은 51건(26%)이 선수 폭력 사건이었다. 고 최 선수 사건이 현장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반증이었다. 이는 마치 정부가 지난 18년간 280조를 쏟아부었지만 저출산 문제가 개선은 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즉 근본적으로 해결의 번지수를 잘못 찾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체육계 폭력의 핵심적 원인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소위 승리 지상주의다. 분명히 과도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고 최 선수와 같이 실업팀 선수들이 재계약할 때나 대학과 실업팀, 프로팀에서 선수들을 선발할 때 어떤 기준이 우선하는가? 두 말할 것 없이 경기 성적이다. 인성과 앞으로의 가능성, 학과성적 등은 다음 기준이거나 아예 무시되는 상황이다. 실업 선수가 재계약을 결정할 때나 진학과 실업, 프로선수 선발 시 경기력 요인이 최우선인 엄연한 체육계 환경에서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승리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차라리 잔인하다. 운동을 즐기라고, 승리보다는 페어플레이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리는 이들에게 너무 사치스러운 말이다. 경기력이 하이 클래스에 오르거나 경기력으로 인해 삶이 결정되는 상황이 아니면 강요 안 해도 누구나 경기를 즐기게 된다.
일반 학생의 경우 학생 자신이나 교사, 학부모에게 학생의 인성이나 체력은 일단 뒷전이다. 향후 학생의 미래를 위해 이들이 학과성적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듯 선수들 중 5~10%만이 실업, 프로팀에 진출하는 이 치열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수, 지도자, 그리고 학부모가 승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체육계 환경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그럼 반복되는 체육계 인권 침해를 근절하기 위해 어떻게 환경을 개선할까? 물론 현재와 같이 체육계의 여러 인권, 윤리 센터가 좀 더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예방 기능을 좀 더 선제적으로 강화해야 하며 복지 부동하거나 무능, 부정한 관리는 반드시 문책해야 한다. 지도자 교육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 선수들에 대한 학교 교육은 절대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선수들 대상의 다양한 진로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아울러 운동선수 선발을 위한 현재의 대학입시 전형은 반드시 전향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런 모든 노력들과 함께 실업팀 선수들이 고 최 선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아마추어 선수로 자리 잡도록 하면 좋겠다.
하루 종일 운동하는 선수들은 프로선수들이다. 아니 그들도 매일 하루 종일 운동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실업 선수들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지방자치단체나 공기업 소속 선수들은 거의 매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운동한다. 다양한 대회를 준비하는 측면도 있지만 전국체전에 선수들을 과도하게 몰아가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전국체전 때문에 지치단체 소속 선수와 지도자가 존재하고, 전국체전이 한국체육 발전의 초석인 것은 틀림없지만 소속 선수와 지도자에게 가하는 압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1980년대 초반 프로야구와 프로 축구가 탄생하기 전까지 실업팀 선수들은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오후에 훈련했다. 그리고 이들은 은퇴 후 원하면 모두 회사에 남았다. 이런 풍토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실업팀에서 선수와 지도자를 선발할 때 최소 3년 무기직의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은퇴나 심각한 부상으로 선수, 지도자직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오전에 근무하던 부서로 돌아가서 일반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일정 정년을 마치는 근무 순환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이제는 실업 선수와 지도자들이 전국체전을 위한 떠돌이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의 정상적인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물론 채용 시 선수와 지도자의 선택에 따라 현재와 같이 급료를 조금 더 받고 1년 계약직으로 가거나 아니면 일반 공무원 수준으로 급료를 조금 덜 받고 정규직으로 가는 투 트랙을 병행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치단체와 기업이 어차피 모든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급료를 지급하고 있는 만큼 체육계와 자치단체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볼 일이다.
이미 시행하고 있는 일부 지방 교육청에서 보듯이 학교 운동부 지도자의 경우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이 조속히 진행되는 것이 미래지향적이다. 평생 직장인으로서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안정적인 직위를 부여하는 것이 고 최 선수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매우 근본적인 또 다른 접근이 될 것이다. 3주기를 맞아 다시 한번 고 최숙현 선수의 명복을 빈다.
(글 : 강신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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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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