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졌는데도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난임'이라고 규정짓는데, 난임 부부들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만나는 난임 환자들은 임신과 스트레스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임신이 안 되는 건지, 직장생활에서의 스트레스가 임신에 영향을 주는지, 난임 시술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착상에 영향이 있는지 등 임신의 모든 과정에 있어 스트레스를 극도로 경계하며 걱정한다.
난임의 스트레스 지수는 '외상 후 증후군'의 스트레스 지수와 비슷할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면 '코르티졸'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여성 호르몬을 조절하는 GnRH 호르몬이 억제되는데,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난소에 영향을 주고 배란에 문제가 생긴다. 또한 스트레스는 미트콘드리아의 기능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미토콘드리아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 난자의 대사기능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가임 여성과 난임 여성을 비교해본 결과 난임 여성이 상대적으로 코르티졸 수치가 훨씬 높았고 활성산소의 환원력도 낮았다. 스트레스를 꾸준히 받는 상황이 난임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난임으로 진단받으면 건강에 대한 걱정을 평소보다 많이 하게 되고, 임신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시점에 부부관계나 성에 대한 관심을 잃는 경우도 많다. 이 밖에도 쉽게 화가 나고 짜증을 내거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책하거나 비관하고 우울한 기분, 수면장애 등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거나 배우자와 깊이 이야기를 나누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난임 시술 과정에서는 난자를 채취할 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 수정란을 이식할 때와 임신 테스트를 할 때도 스트레스 강도가 올라가는데, 신기하게도 그룹 상담을 1주일에 한 번씩 6주간 받은 환자들은 스트레스 강도가 반절로 떨어지는 걸 볼 수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상호 관계를 좋게 유지하고 친밀하게 함께 해 나가는 것도 힘든 난임 치료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된다. 부부간의 의견이 일치되고 서로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공유하는 부부는 서로한테 만족도가 높아 난임 스트레스를 잘 견디고 대처해 나갈 수 있다.
난임 치료를 받는 동안 직장을 그만둘지 고민하는 환자들도 많은데, 난임 환자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난임은 '과정'이라는 것이다. 난임은 언젠가는 끝이 난다.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되는 목표를 이루면 다시 자신의 삶과 직업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일을 그만두고 난임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건 가급적이면 피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하고 슬픈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우울한 상태에서는 임신율과 시술 성공률이 떨어진다. 우울증이 심하지 않은 상태라면 심리 상담만으로도 자연임신의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난임 치료 중 항우울제를 사용해도 될까? 연구에 따르면 경증의 우울증은 상담으로 극복하거나 항우울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까지는 회복을 한 뒤 난임 치료를 시작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명상이나 요가 등의 이완요법과 함께 '마음챙김'을 추천한다.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마음챙김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그때 왜 유산이 됐을까?' '시술하는 동안 쉬었어야 했나?' '또 유산이 되면 어떻게 하지?' 등 실패한 이유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다. 밥을 먹으면서 맛있어 하고, 오늘의 날씨를 온 몸으로 느껴보는 등 일상에서 주는 그때 그때의 감각에 집중하다 보면 난임으로 인한 불안을 많이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글 : 서울라헬여성의원 김명희 원장)
하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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